인류 최후의 전쟁신이 폐허가 된 지구의 생존자들 사이에 몸을 숨긴다. 정체를 감춘 그의 곁으로 돌연변이 야수들이 조여 온다. 케인은 인류에 단 하나 남은 전쟁신이지만, 그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하기를 바란다. 생존자들 사이에서 그는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며, 무너진 세상의 가장자리를 파고드는 돌연변이 야수들 앞에서도 자신의 힘을 감춘다. 종이 위의 계획은 단순하다. 몸을 숨긴 채 도움이 가장 절실한 이들을 조용히 돕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익명의 선물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긴다. 선물을 받은 이들만이 그를 주시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이름을 지키려 할수록 그의 발자국은 오히려 더 많은 흔적을 남긴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케인이 은밀히 아끼는 열일곱 명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저마다 설명할 수 없는 선물로 그와 이어져 있다. 누가 자신을 돕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가 겉보기보다 훨씬 위험한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이도 있다. 케인은 자신을 어디까지 드러낼지 결정해야 하며, 베푸는 모든 친절은 그를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데려간다. 야수들이 점점 대담해지고 야영지가 더 위태로워질수록, 비밀을 지키는 대가도 커진다. 가장 작은 선택조차 한 남자가 조용히 잊히고 싶다는 사적인 바람을 넘어서는 거대한 파장으로 번져 나간다. 「황무지의 군주」는 잔혹한 생존의 순간과 충성, 그리고 의심이 교차하는 고요한 순간들 사이를 오가는 분위기로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다. 정체를 숨긴 주인공의 이야기,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생존 배경, 떠밀리듯 주목받는 마지못한 지도자를 좋아한다면, 이 작품은 인물에 대한 집중을 놓치지 않고 세 가지를 모두 선사한다. 각각의 진실이 천천히 드러나도록 짜인 호흡 덕분에 케인과 그가 지키는 이들 사이의 유대는 서둘러 얻어진 것이 아니라 공들여 쌓인 것처럼 느껴진다. 매 장면의 긴장은 하나의 물음으로 이어지며, 그다음 물음은 이미 문을 두드리고 있다.